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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유럽에서도 ‘통(通)’

버들lks 2012. 5. 1. 17:55

불교, 유럽에서도 ‘통(通)’ | 기타

수수리 2010.12.01 23:12
http://blog.daum.net/religiouspeace/82

 

불교, 유럽에서도 ‘통(通)’

 

 

 

 

“학자들은 불교의 유형을 주로 남아시아의 테라바다(상좌부 또는 소승)불교, 중국의 대승불교, 일본의 선(젠) 그리고 티베트나 히말라야 지역의 탄트라 혹은 티베트 불교로 나눈다. 유럽엔 이런 여러 종류의 불교가 도입됐지만,

영국불교회가 발행하는 계간지「중도」에 실렸던 푼촉 스님의 기고문 ‘서구의 불교’의 한 구절이다.

 

불교는 더 이상 동양의 종교가 아니다.

서구 지성인들을 사로잡는 불교의 매력은 무엇일까?

 

독일의  에카르트,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불교에 대한 관심이 수용의 사상적 풍토조성계기되고

 불교 경전 번역에 세대를 이은 작업이어져

유럽내에서 가장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은 나라는 독일을 꼽는다.

 

14세기 에카르트와 같은 신비주의 신학자와 헤겔, 쇼펜하우어등 19세기 철학자들은 이미 불교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이러한 분위기를 유럽 어느 나라보다 일찍 독일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상적 풍토를 조성했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집에 불상을 모실 정도로 불교에 심취해 있었으며, 라이프니츠, 헤겔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불교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구에서 불교를 이해하는데 언어의 문제는 크다.

대부분 다른 문화를 토대로 출발한 내용과 형식을 받아들이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초기 불교전래와 수용에서의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중국어, 일본어, 티베트어로 된 불교 경전의 역경작업은 매우 험난했다.

1828년 동양학자 J.J.슈미트가 몇 권의 불교 서적을 독일어로 번역했고, 1859년에는 독일인 쾨펜이 티베트 불교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 19세기 후반부터 독일 학자들의 번역서를 통해 유럽에 들어오게 되었다. 팔리어 경전 보급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칼 오이켄 노이만은 에카르트 같은 신비주의 기독교 신학자에게 깊은 존경을 표하면서 그를 위대한 지성, 사상가로서 기독교를 제아반 유일한 사상가라고 하여 중국의 노자에 비견했다. 하지만 노이만은 그들의 인식이 결코 붓다의 경지와는 비견될 수 없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서구사회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은 1922년 헤르만 헤세가 쓴 《싯다르타》로 인하여 더욱 증가하였다. 싯다르타는 당시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유럽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으로 제시되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전쟁을 겪은 서양인들은 당시 기존의 정치와 종교의 역할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전쟁은 서양인들에게 그들 종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으며 그 새로운 사상적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불교였다.

 

 

 

 

 

 

절대적 힘의 논리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중시하는 불교,

책과 예술작품통해 서구인들을 매료시키다.

 

불교는 절대적인 힘의 논리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여 삶의 지혜를 스스로 찾아가는 사상적, 수행적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불교의 내용들이 책과 예술 작품 등을 통하여 확산되면서 서구인들은 점차 불교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서구인들의 불교의 수용은 그들이 속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융은 붓다를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천재로 인정했으며, 그의 가르침이 지니고 있는 혁명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인류 전체의 영적인 개척자 붓다는 깨우친 자가 스승이며 구원자”라고 하며 선사상을 찬양하였다.

 

프로이트의 제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는 1957년 ‘선불교와 정신분석’이라는 주제의 논문에서 정신분석과 선이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선에서 깨달음을 추구한다면 정신분석학에서는 무의식을 의식으로 변환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서 그 유사성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그의 연구는 현대 정신분석학에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서구에서 선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후 헤르만 올덴버그, 칼 자이덴 슈티커 등이 중심이 되어 1903년 라이프니치에서 ‘독일을 위한 불교포교회’가 설립됐고, 1909년에는 ‘독일 팔리어 학회’가 결성됐으며, 1912년에는 ‘불교적 삶을 위한 연합’이란 단체가 결성됐다.

1951년에는 베를린 불교협회가 창설됐고, 1960년 막스 글라호프에 의해 16개로 나뉘어져 있던 불교단체가 독일 불교도연합회(DBU)로 통합됐으며, 1984년에는 연방정부에 의해 불교가 세계적 종교로 인정받게 되었다. 2003년에는 독일 중고등학교 과정인 김나지움에 불교가 정규과목으로 개설될 정도로 독일인들에게 불교는 보편적인 종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독일의 불교학은 함부르크대학을 비롯한 유수한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한문 원전 연구에 치중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인들이 그토록 많은 영향을 받은 선사상과 불교문화예술은 주로 초기에는 일본불교의 선과 예술을 중심으로 전해졌으며, 이후 점차적으로 중국, 티베트, 베트남, 스리랑카, 태국, 캄보디아. 네팔 등의 나라들에서 많은 승려들과 서적들이 건너가 번역되고 소개되었다.

 

한국불교의 경우 1980년대부터 서양에 소개되기 시작하였으며 여기에 큰 역할을 하신 분은 숭산 스님이다. 이 밖에도 서양에 유학한 학생들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한국불교(가장 많이 다룬 내용 중의 하나가 원효이다)에 대하여 언급함으로써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한국불교문화를 진지하게 둘러보는 유.럽인들의 표정이 흥미롭다.

                                               (출처-newsis)

 

 

현대문화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서구의 초기불교 수용은 주로 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비과학적이라 치부한 불교경전을 번역하며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그들 신학자들의 많은 수가 불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후 당대 지성인과 철학자, 예술가들 사이에 불교서적이 소개되면서 불교와 선사상은 그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결국 기독교 주도의 번역으로 알려진 불교경전과 서적들은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퍼졌다.

특히 예술가들을 통하여 표현된 불교와 선사상 내용들은 일반인들에게까지 거부감 없이 전파되었다.

 

 

절대적 지배에서 벗어나 보편화, 일반화로 모두가 향유하는 불교문화로 자리잡다.

자신들의 문화와 결합하여 독자적특성을 표출

 

이러한 현상들은 많은 파급효과를 가져오며 1980년대를 중심으로 유럽에는 선풍(禪風)이 일어나게 되었다. 선사상에서 수행, 자비, 깨달음에 대한 개념들은 그들 자신을 오랜 시간 지배했던 절대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큰 자극제가 되었다. 선은 자유를 가져다주었으며 삶에 활력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선이 보편화되며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선은 더 이상 특수한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고급문화가 아니라 일반화된 문화가 되어 갔다.

 

초기에는 동양문화를 수용하여 그대로 향유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문화와 결합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서구 독자적인 특성들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불교는 티베트불교나 남방불교가 널리 퍼졌다 해도, 대부분 현지인의 정신세계에 맞게 현지화되었다. 유럽 불교인들은 대부분 불교를 종교보다는 생활철학으로 본다. 가톨릭, 개신교도가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서 참선을 하고, 경전공부를 한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 두신을 섬긴다’고 생각지 않는다.

영국불교협회의 브라이언 부회장은 “영국에서 불교는 종교라기 보다는 학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새로운 세계관이자 생활철학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독일 베를린불교협회 회장인 라이너 노악 박사는 “일상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쌓인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게 독일 불교인들의 첫 번째 목표”라고 말했다.

 

 

유럽인들은 또한 소승,대승 그리고 티베트 불교든 종파와 수행의 차이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베를린 불교협회는 50여개의 서로 다른 불교단체들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각 사찰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전통을 강요하지 않는다.

 

 

유럽사찰은 불교 신자 이외에도 기독교, 이슬람 등 모든 종교의 신자들에게 열려있다. 자신의 종교와 관계없이 법당에서 참선을 하고, 경전을 공부한다. 스리랑카 불교협회가 운영하는 베를린의 ‘불교의 집’ 주지 베푸너 스님은 “우리는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사찰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불교의 원리를 전하고, 그 원리에 따라 살도록 유도하는게 우리의 목적입니다. 현실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찾아오든 불법에 귀의하기 위해 찾아오든 관계없습니다. ”라고 전한다.

 

 

 

 

 

   틱낫한 스님의 플럼빌리지를 찾은 사람들이 고요함속에 자신을 돌아보고있다.

 

 

유일신 계통의 종교가 전통적으로 뿌리 깊이 박혀있는 서구에서는 모두 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오랜세월 종교분쟁을 경험하고 있다. 근 현대에 들어서면서 발생되는 문제들에 유일신 사상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자각심에 다른 사상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에 불교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자신이 놓은 돌다리도 다시 두드려보고 건너는 유럽인들에게 불교는 지금 생활속에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

 

스스로의 자각과 관심에 의해 불교를 연구하고 전법활동을 하며,종파와 수행법에 구분을 두지 않고 모든 종교의 신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개방하는 그들에게서 다문화 다종교 사회속에 사는 우리들이 처한 종교차별과 타종교폄훼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자.

 

 

 

참조- 불교평론 (44호 2010년 9월 6일) 현대문화와 선사상/ 윤양호